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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로 뉴욕타임스 84주 장기 베스트셀러 동명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감독은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각색을 하여 제작하였고 어느 부분은 우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들을 나름대로 유쾌하게 그려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케이트 블란쳇이 주인공 역할을 하여 캐릭터의 특성과 감정표현을 잘해주었으며 자칫 위험한 인물로 우울함도 느껴지고 남들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주인공의 성격이 문제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보는 시각과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들을 엮어 생각하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와 보이후드 작품도 했는데 대사량이 엄청난 스타일의 영화를 많이 만든 감독이라고 합니다. 저도 그 영화들을 다 보았는데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쏟아내는 그 말들을 보며 대단하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많은 말들이 하나같이 엉뚱한 소리로 들리지 않고 생각하는 것을 잘 묘사하며 이야기를 털어놓는 느낌이 마치 불평불만 같아 보일 수 있고, 특이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해가 되는 스토리텔링의 능력을 보며 감탄도 했습니다. 이 영화 역시 인물에 접근하는 방식이 남다르고 다채롭게 공감을 일으켜주는 감독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잃어버린 빛
버나뎃(케이트 블란쳇)은 젊은 나이에 건축가로 유명세를 탄 인정받는 천재 건축가였습니다. 자신이 설계한 건축이 철거되면서 상처를 입고 업계를 떠나게 됩니다. 결혼과 몇 번의 유산으로 심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사랑하는 하나뿐인 딸을 얻게 되고 가족은 IT 개발하는 남편의 직업으로 인해 시애틀로 이주를 하게 됩니다.
대인 기피증으로 이웃과 어울리지 못하고 불만과 불평을 쏟아내며 적응을 못하는 버나뎃이지만 하나뿐인 딸은 언제나 엄마의 편이 되어주고 친구처럼 이해해주는 착한 아이입니다. 딸이 사립학교로 가기 전에 가족여행으로 남극을 가자고 하지만 버나뎃과 남편은 망설이게 되고 간절한 딸의 바람으로 허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버나뎃은 그 여행이 자신에게 불안한 여행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딸이 실망할까 봐 일단 가기로 합니다.
외롭고 쓸쓸함을 자처하는 버나뎃은 자신의 모든 이야기들을 가상 비서 만줄라에게 이것저것 많은 것을 얘기하고 여행에 필요한 것들과 이웃과 사소한 문제가 생겼을 때도 인공지능 비서에게 모든 것을 부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쩔 줄 몰라 쏟아내는 말들을 보면 누가 봐도 불안한 정서를 가진 사람으로 비칩니다.
결국 주변 사람들과 남편은 버나뎃을 위험한 상태라고 인지하고 정신과 치료를 권유하게 되지만 버나뎃은 화장실 창문으로 도망쳐 홀로 남극 여행을 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게 되고 그 후로 가족과 만남을 통해 응원을 받게 됩니다. 버나뎃은 이웃들과 남편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정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겠지만, 20년 만에 만난 동료와의 대화를 보면 동료는 버나뎃이 왜 그런지 알아채며 창작하는 사람들은 창작을 해야 한다는 조언을 해줍니다.
다시 일을 시작하여 뭐라도 만들라는 동료의 말은 버나뎃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칠 정도로 위협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을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버나뎃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다르게 비춰주는 장면에서 인간의 행동은 어떠한 내면의 이유로 표출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대목이었습니다. 버나뎃의 내면의 잃어버린 빛은 언제 발휘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문제적 외로움의 유쾌함
버나뎃은 주변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만줄라라는 인공지능 비서에게는 끊임없이 말을 하며 요구도 하고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그것이 정상적으로 보이던 아니던 외로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이 꼭 우울함으로 느껴지게만 하지는 않습니다.
버나뎃은 표면적으로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사람일 뿐이고 자신의 특성이 도드라져 있을 뿐이지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못 이겨 실수도 하긴 하지만 그런 모습들이 꼭 어두운 면으로 비쳐 보이지는 않습니다. 버나뎃에게는 한결같은 사랑과 응원과 관심을 주는 착한 딸이 있었고 남극으로 엄마를 찾아가기까지 딸은 남편과 다르게 포기하지 않는 면모도 보여주며 가족애를 한껏 끌어올려주었습니다. 그 모습과 엄마를 찾는 여정으로 인해 남편도 진정으로 버나뎃에게 필요한 게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사실 주변 이웃들과 정신과 상담의사 등 주변 인물들과 남편은 그저 문제가 있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위태로운 사람으로 비춰 보이는 한 가지 시각만 가지고 있을 뿐 그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방식이 남다른 건 딸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가족들이 모두 서로를 이해하며 화합이 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저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으며 앞으로 버나뎃의 도약을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있어 보이는 외로운 주인공의 스토리를 조금은 엉뚱하고 재치 있게 풀어 나갔기 때문에 결말도 자연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남들이 뭐라 해도 자기를 응원하고 사랑하고 내편이 되어주는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입니다. 그것을 무겁고 진지하게만 느끼게 하지 않고 가볍게 풀어나갔으며, 주인공 버나뎃이라는 인물을 허술함으로 끝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애틋함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부정을 긍정으로
삶에서 좋은 것만 보고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내가 마음이 너무 지치고 힘든 시기가 계속되었다면 부정적인 생각이 끊임없이 나올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했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버나뎃처럼 창작해야 하는 천재적인 발상들을 쏟아내야 해결이 된다면 나는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를 살아있게 하고 내가 좋아하는, 내가 나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들은 무엇일까요? 그런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 또한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인가를 할 때 설렘, 그게 큰 것이 아니어도 작은 행복일지라도 삶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일들을 하나씩은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영화의 첫 인트로 장면부터 저는 인상 깊었습니다. 영화 내용을 잘 모르고 케이트 블란쳇이 나오길래 감상했는데, 들어가는 내레이션의 대사 중 디스카운트 메커니즘이라는 말이 나오며 우리의 뇌는 좋은 것을 가졌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잊히게 된다는 점을 상기시켜 줍니다.
좋은 것을 보기 위해서는 뇌의 그런 반응을 이해하며 부정적인 신호에만 집중하지 말고 주변의 다채로운 빛을 발하는 좋은 감정과 긍정적인 일들을 찾아보려 노력하는 태도가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쁜 것을 잊는 것은 좋지만 좋았던 것 또한 잊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자신 안의 아름다움을 하나씩 발견하고 열정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안겨준 영화였습니다.